김경배 화성시농업기술센터 소장

김 경 배
화성시농업기술센터 소장

 

죽어서 썩어지는 것들은 모두 내게 오라
이듬해 연둣빛으로 다시 움트게 하리니
그저 바람으로 지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다시 사는 부활의 땅임을
들녘 출렁이는 가을
알알이 매어달린 이삭으로
보여주리라…

요즘 들녘에 나가 가만히 논두렁을 들여다 보면 파릇파릇한 풀들이 부드러운 흙살을 뚫고 살포시 고개를 내미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풀을 지지해 주고, 자라게 하며, 결실을 맺게 해주는 것이 바로 흙이다. 흙은 생명의 모태이며 인류 문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주변의 밭 흙 1㎝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3천만 마리 이상의 미생물과 지렁이, 땅강아지 등 무수한 생명체들이 또 하나의 은밀한 세상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흙의 생명력
요즘 안타깝게도 일본이 거대 지진 해일로 엄청난 재앙을 겪고 있다. 그 지진의 근원지가 바로 깊은 땅 속에서 꿈틀거리는 용암이다. 끓는 용암이 흙의 원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흙은 용암이 식어서 바위가 되고, 바위가 수 천년동안 풍화되어 자갈과 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겉흙 1㎝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약 20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한다. 실제로 식물이 자라는 대부분의 흙은 몇 천만년이 걸려 만들어 진 것이며, 그 잎과 줄기가 썩어 부드럽고 거무스름한 유기물이 되면서 식물의 뿌리가 쉽게 내릴 수 있는 토양으로 된 것이다.
흙은 포근한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지렁이나 땅강아지, 미생물 등 무수한 생명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이 버린 각종 쓰레기나 폐수 등 오염물질들도 말없이 받아들이고 정화시킨다. 이렇듯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흙이 쉬운 농사, 노동력 부족 등을 이유로 농약, 화학비료가 남용돼 생태계 연결고리마저 위협 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화학비료는 작물에 필요한 영양분을 쉽게 공급하기 위해 식량이 부족했던 시기에 수확량을 더 많이 얻고자 사용했던 것인데 지금은 지하수와 강을 오염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비료의 화학작용은 흙 알갱이 끼리 서로 밀어내도록 하기 때문에 물과 공기가 저장되지 못해 결국 식물이 잘 자랄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뀐다.

흙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
이렇게 흙이 자정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농업 생산 기반이 흔들리게 되고, 정상적인 농산물 생산이 어려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업인과 소비자 모두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흙을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생활·산업 폐기물 등 환경오염 물질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친환경 농자재 사용을 상용화 하고, 농약이나 비료 주는 것은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경작지의 철저한 관리를 위해 흙도 사람처럼 매년 또는 2년에 한번은 건강 검진을 받게 하여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시비 처방을 해주어야 하며, 흙의 보약인 퇴비를 많이 주어 흙 알갱이가 서로 붙는 역할을 하도록 토양을 개량해 줘야 한다.
‘모든 것은 흙이 키운다.’ ‘농부는 거둘 뿐이다.’ 라는 이 말은 흙을 알아야 참된 농사꾼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흙은 우리 모두의 영원한 생명 터전이며 한번 오염되고 망가진 흙은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건강한 흙에서만 건강한 먹을거리가 생산되는 것이기에 우리 후손들에게도 반드시 유기물이 풍부하고 미생물 활동도 왕성한 살아있는 흙을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흙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흙으로 빚어졌다는 우리도 언젠가는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흙은 우리 육신의 소중한 고향이기에 살아 숨쉬는 흙이 되도록 정성으로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겨우내 얼었다 촉촉하게 풀리는 흙살 한 움큼을 손에 꼭 쥐면서 전에 썼던 <흙>이라는 시 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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