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어제(6일)가 24절기 중 세 번째 절후인 경칩(驚蟄)이었다. 땅 속에서 긴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아차 늦었다 싶어 놀라서 눈 비비고 땅 밖으로 뛰쳐나온다는 날이다.
이때가 되면 겨우내 꽝꽝 얼어붙어 있던 대동강 물도 풀린다고 했고, 돌돌거리며 얼음장 밑을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타고 아랫녘의 화신(花信)이 속속 전해지기도 한다.
우리 옛 선인들은 절기상 우수(雨水)·경칩이 지나면 음력으로는 2월의 들머리지만 바야흐로 새봄의 약동이 시작된다고 믿어 한껏 기지개를 켜고 한해 살림살이 준비를 어긋남 없이 했다.
‘보습 쟁기 차려 놓고 봄갈이 하여 보자/ 기름진 밭 가려서 봄보리 많이 심고/ 목화밭 되갈아 두고 제 때를 잊지 마소/ …… / 솔가지 찍어다가 울타리 새로 하고/ 담장도 손을 보고 개천도 쳐 올리소/ …… / 산나물은 아직 때 이르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입맛을 돋우나니/ 본초강목 참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창출 백출 당귀 천궁 시호 방풍 산약 택사라…’
<농가월령가>의 ‘2월령’ 구절인데, 중춘(仲春)인 이때에 해야 할 봄갈이(春耕)와 나물·약재캐기 등을 권하고 있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실로 아득해 보이는 농경시대의 전형적인 농촌풍경이 아닐 수 없다. 또 이맘 때 쯤이면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춘곤증(春困症)이라는 봄기운의 나른함에 빠져 드는데, 저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 맹호연(孟浩然)은 <춘면(春眠)>이란 시를 지어 이렇게 읊었다.
춘면부각효 처처문제조
春眠不覺曉 處處問啼鳥
야래풍우성 화락지다소
夜來風雨聲 花落知多少
(봄잠이 하도 달아서 아침이 오는 것을 몰랐더니 곳곳에서 새우는 소리 들리더라. 지난 밤 비바람 소리에 꽃이 얼마나 졌으리오.)

짧은 봄날의 나른한 서정을 시인의 애틋한 감성으로 그린 절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봄, 우리는 아직도 지난 겨울의 가혹한 시련의 끝자락, 그 가시지 않은 어두운 잔영에 싸여 봄날을 꿈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어지럽게 춘설이 날리고, 구제역·AI로 죽어간 가축들의 원혼서린 울음소리는 서러운 강물이 되어 이 산하를 적시며 흘러간다.
‘봄이 왔으되 봄 같지 않음(春來不似春)’인가. 산 너머 남촌에는 유채가 피어나고 매화가 눈망울을 터뜨리고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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