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문열

지난달 23일 오전 8시 30분. 수원의 경기도청 ‘21세기 희망의 경기포럼’ 강사로 한국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소설가 이문열 작가가 등장했다. 역시 이문열 작가의 파워는 대단했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육성을 듣기위해 온 독자들로 주최 측은 보조석까지 마련하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자연스런 백발, 줄무늬 넥타이에 회색양복 차림새의 이문열 작가는 이날 “생산자로서의 독자”를 주제로 이야기를 펼쳤다.

# 제대로 학교 다니지 못했지만...
“제가 제대로 학교 다닌 적이 없어 아침 일찍 일어나기가 무척 힘든 사람인데, 오늘이 평생 동안 다섯 번도 안되게 일찍 일어난 날 중의 하루일 것”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작가의 말처럼 사실 이문열 작가는 우여곡절이 많은 성장기로 인해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작가의 아버지는 천석꾼에다 영국 유학까지 다녀 온 엘리트로, 서울대 농대 교수를 지냈다. 하지만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월북하면서 작가의 가문은 대공수사기관으로부터 끊임없이 감시 받는 사찰대상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가세는 기울었고 그의 인생도 순탄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곤 전부 중퇴로 끝났다. 서울대 사범대를 중도에 그만두고 사법고시에 도전했지만 연이어 실패, 단념하고 방향을 틀어 신춘문예에 도전했으나 이도 여의치 않았다. 드디어 1977년 대구매일신문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로 비로소 문단에 첫발을 디뎠다.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새하곡’으로 소설가로 등단, 1984년부터는 본격적인 전업 작가로 나섰다.

# 생산자로서의 독자
“작가님의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20대를 보냈어요. 그 작품들이 없었으면 전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메마른 사람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세상에 내놓은 정신의 자식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한 교훈과 즐거움이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지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글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신 분, 계속 선생님 글 기다릴게요.”
이렇듯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독자의 마음을 사로 잡는 이문열 작가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그 대답을 이문열 작가의 ‘생산자로서의 독자’라는 강연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이문열 작가가 갖는 중요한 장점 가운데 하나는 항상 자기 글의 독자가 누구일지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데 있다. 그가 강조하는 ‘독자’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독자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독자다. 어떤 특정 유형의 소설을 좋아할 수 있는 특정 유형의 독자다.
이문열 작가의 글이 힘과 설득력을 갖는 것은 이런 ‘특정 유형의 독자’를 올바로 설정하고, 창작 기간 내내 그들과 대화하는 심정으로 계속하여 글을 검토해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작가는, 독자를 올바르게 설정하는 것은 모든 창작의 출발이자 창작의 전 과정을 시종 버티게 해주는 힘이라고 말한다.

# 제2의 고향, 부악문원
작가가 이날 평생 살면서 손꼽을 만큼 아침 일찍 일어나 수원까지 오기 위해 서두른 것은 이천의 부악문원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천시 마장면 장암2리에 위치한 부악문원은  1990년대 초반부터 이문열 작가가 베스트셀러와 주옥같은 명작들을 선보이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내고 있는 곳이다.
특히 작가는 1998년에는 사재로 ‘부악문원(負岳文院)’을 설립하여 작가지망생, 문학연구자, 국내외 번역가들을 위해 집필실을 개방하여 무료로 머물 수 있게 하고 국내외적 규모의 문예창작·연구 세미나와 교류행사를 개최해 왔다.
“제 2의 고향인 셈이죠. 뭔가를 가르친다기보다 스스로 되어가는 장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컸습니다. 청년들이 제가 제공하는 숙식을 활용하면서 등단 전에 고단한 습작을 마무리짓기를 바라는 취지입니다.”

# 유언비어는 그것이 먹히는 사회일 때 만들져
이문열 작가는 이날 강연에서 소비자로서의 문학 독자를 예로 들면서 “고전적인 형태의 소비자 개념은 생산에 크게 관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이들이야말로 생산 원형을 결정하는 생산자 역할까지 하고 있다”며 인터넷시대에 생산자로서의 소비자 개념이 정치에까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얘기를 꺼냈다.
즉 과거 작가들은 자신의 글을 읽을 독자가 누구일지 머릿속에 정하고 글을 써 왔으며 이런 관점에서 작품 구상, 주제와 인물 결정 등의 창작과정에 독자가 간접적으로 개입해 왔다고 이문열 작가는 말했다.
이 작가는 최근의 무상급식 논란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다.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사람이 수장이 된 것은 선거를 하며 여론 형성과정에서 여러분들이 참여한 것”이고, “결국 무상급식은 선거를 하며 여론형성 과정에 참여한 유권자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서는 사고로 인한 침몰, 미군 오폭, 정부자작극 등 정부발표를 불신하는 음모론이 인터넷상에 팽배한 원인을 짚어주었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읽을 독자를 예상하고 글을 쓰듯 생산자로서 음모론 주창자들도 자신의 주장을 믿는 독자(소비자)를 머릿속에 상상하며 ‘이렇게 말하면 믿을 사람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 있기에 음모론을 퍼트린다는 것이다.
이문열 작가는 “(소비자가) 믿음을 보이지 않았는데 (생산자가) 유언비어를 지어내는 경우는 드물고, 또 그렇게 해봐야 효과가 없다”며 “이미 우리 사회는 선정, 선동이 먹히게끔 정책결정자나 선동가들한테 하나의 믿음을 투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그런 정보를 믿는다고 소비자들을 야단칠 게 아니라 그런 걸 내봤자 믿지 않을 거란 전제가 주어져야 그런 게 생산되지 않는다”면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생산과정에 무상급식 등 공짜 복지의 허구성에 대해 선거를 통해 주권을 행사한 ‘유권자들이 지어야 할 책임’이라고 했다.
작가의 육성은 그의 작품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의외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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