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과 입학 시즌을 맞이했다. 졸업과 입학은 인생사에 있어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경건한 이벤트다.
입학, 특히 한국에서의 대학 입학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고달프고 치열한 입시경쟁 끝에 얻는 행운의 관문이다. 따라서 취업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명문대학 입학에 성공했을 경우 그를 뒷바라지한 부모, 특히 어머니의 기쁨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며 비교하기 힘든 감격이다.
입학 시즌을 맞아 친지로부터 아들이 대학 입학에 성공했다는 기쁨에 들뜬 감동의 전화가 왔다. 그 목소리가 너무 짠해 내 가슴에도 잔잔한 기쁨이 물결처럼 스며왔다.
입학 성공 축하를 보내야 하기에 입학선물은 무엇을 건넬까를 생각하기 이르렀다. 50년대말 대학 입학 당시 우린 만년필을 갖는 게 가장 큰 소원이었다. 파카만년필을 가지면 노트 정리에 긴요하게 쓰일 뿐 아니라 남 앞에 뻐길 수 있는 값진 문구이면서도 장식품이기도 했다.
3월 입학식이 끝나면 곧이어 원숭이, 사자, 호랑이가 살던 창경원에는 벚꽃이 만발했다. 당시 창경원 벚꽃 감상은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서울근교 시민의 상춘(賞春) 나들이로 무서운 인파가 몰려왔다.
종로3가에서 원남동에 있는 창경원을 찾아가는 길은 인파로 가득해 앞뒤 사람이 엉켜 발길 막히기가 일쑤였다. 이때 소매치기들이 등장해 눈에 잘 띄지 않는 말총 끄나풀로 양복 윗저고리 포켓에 꽂힌 만년필을 잽싸게 낚아채어 갔다. 입학과 졸업식 때 받았던 귀하디귀한 만년필이 이처럼 헛되이 남의 손에 넘어갔다.
입학시즌을 맞아 50~60년대 우리의 가난했던 그날의 일상(日常)이 아련한 추억으로 되살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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