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
지금 30, 40대 이상 된 이들이라면 이 <졸업식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선생님의 풍금반주에 맞춰 목청껏 노래 부르다가는 이내 눈물바다가 되었던 지난 시절 60, 70년대의 졸업식 풍경은 한 마디로 애틋한 정감어린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것이었다. 아직은 덜 익은 어린 제자들을 떠나보내는 선생님이나 정들었던 교정과 친구들을 떠나가는 졸업생 모두 가슴 아린 석별의 정을 나누며 서로를 아쉬워 했다.
이때의 졸업선물로는 거의 너나없이 비로드(우단)로 된 졸업통(졸업장을 말아 보관하게 되어 있는 원통)과 조화꽃다발, 그리고 목에 친친 감아주었던 오색종이테이프가 다였다. 개중에 읍내 학교로 진학하게 된 아이들은 집안형편에 따라 ‘빠이롯드’ 만년필 혹은 손목시계를 선물로 받는 것이 최고의 호사였다. 그리고 이날만큼은 거의 전 식구들이 부산하게 졸업식장을 찾아가 축하해 주고는 중국집으로 데리고 가 평소에는 쉬 먹어보지 못하던 자장면과 탕수육, 잡채밥과 군만두로 입호사를 시켜 주는 것이 정해진 일정이었다. 
단지 6년간의 초등학교 과정, 또는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는 것뿐인데도 정말 이날 받아드는 졸업장은, 그야말로 개발시대의 어두운 그늘에서도 오로지 헌신으로 자식들을 부여안고 있었던 부모형제들의 눈물어린 희망의 징표였다.
그 세대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을 하나 둘씩 둥지에서 떠나보내고 있지만, 그 적의 정서나 애틋함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밀가루에 날계란을 뒤집어 쓴 아이에 발기발기 찢기운 교복을 걸치고 괴성을 질러대는 아이들, 심지어는 입고 있던 옷을 홀딱 벗기는 알몸 졸업식이 통과의례처럼 만연되어 있는 교정 그 어느 곳에서도 사랑과 존경, 그리고 희망의 그림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막연하게 세태 탓으로 돌리기에는 우리 모두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너무 멀리 와 있는 것 같다.
이제 곧 졸업시즌이 온다. 한번쯤은 철없던 지난 시절의 애틋했던 추억 한 자락을 피워 올려 잊혀진 옛사랑을 그리워도 해보는 작은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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