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홍종운 토양학박사

 

홍 종 운
토양학박사
농촌진흥청 국제농업기술협력 자문위원
본지 객원대기자

 

새해에는 분명히 풍년이 들 좋은 조짐이 보인다.
그 좋은 조짐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사람의 노력이다.

어려서 시골에 살던 때 어른들 사이에서 오가던 말씀이 생각난다. “올 겨울에 눈이 많이 왔으니 새해에는 풍년 들겠어.” (그 때 시골에서는 음력을 썼기 때문에 대부분의 겨울이 설 앞이었다.) 어려서 그런 어른들의 말씀이 정말일 지를 따져본 적은 없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씀이니 그러려니 여겼다. 그래서 새해에 풍년이 들 것이란 이야기가 사람들을 즐겁게 했던 것 같다.
흉년, 그건 참 지겨운 거였다. 흉년 뒤에는 어김없이 곤궁한 겨울이 따랐고 보릿고개가 따랐기 때문이다. 흉년의 겨울나기는 참 힘든 것이었다. 시래기죽으로  허기를 달래고 동짓달 긴긴 밤을 지새우는 것도 힘든 일이었고, 보릿고개의 긴 낮을 초근목피(草根木皮: 풀뿌리 나무껍질)로  버티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니 새해에 풍년이 들 거라는 말은 복음 같은 것이었다.

눈 많고 추운 겨울의 축복
이제 나이 들고 사리를 좀 알게 된 지금, 그 때 어른들 사이에서 오고가던 그 말씀이 참이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눈이 많이 온 겨울 뒤에는 풍년이 따를까? 그럴 거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이제까지 흙에 대해 배워왔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눈이 많이 오고, 온 눈이 빨리 녹지 않을 정도로 춥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학교에서 배웠던 게 있다. 좀 어려운 말이기는 하지만 건토효과(乾土效果)란  게 있다. 바짝 말랐던 흙에 물이 들어가면 식물이 이용하기 쉬운 질소가 더 많이 우러나온다. 이런 현상을 건토효과라고 한다. 왜 그런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흙이 바짝 마르면, 흙에 들어 있는 유기물이 분해되기 쉬워져서 그렇다고 설명하고 있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논을 이른 봄에 갈아 논흙을 봄 내내 말렸다. 그래야 농사가 잘 된다고 여겼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옳았던 것 같다. 눈이 많이 오고 강추위가 계속되는 것과 건토효과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관계가 있다. 흙이 언다는 것은 흙이 마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흙이 얼면 흙 속의 물이 자유를 잃는다. 그렇게 되면 흙의 유기물은 마르는 것과 같아진다. 그러니 심하게 언 흙이 녹으면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질소가 더 많이 우러나오게 된다. 눈 많고 추운 겨울이 주는 축복의 한 가지다.

좋은 조짐과 과학영농의 현실화
눈 많은 겨울은 다른 축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겨울에 눈이 많았던 것은 이른 봄 들 일을 하기 편하게 한다. 못자리를 만드는 데에는 말할 것도 없고...
한 가지 더 들은 풍월을 한다면 혹독하게 추운 겨울은 이듬해에 병과 해충의 발생이 적다고 한다. 혹독한 겨울 추위가 여러 가지 병과 관련된 생물들의 겨울나기를 훨씬 힘들게 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저런 걸 생각해 볼 때 새해에는 분명히 풍년이 들 좋은 조짐이 보인다. 그러나 좋은 조짐, 그것은 어디까지나 좋은 조짐이지 현실은 아니다. 그 좋은 조짐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사람의 노력이다. 좋은 조짐이 있을 때 사람의 과학적인 노력이 더 빛나는 법이다.
우리나라에서 공인된 과학적인 농사의 길잡이는 농촌진흥청이 여러 해에 걸쳐 만든 표준영농교본에 들어 있다. 표준영농교본에 들어 있는 기술들의 실천을 도와주는 현장의 기관은 농업기술센터다. 우리 농가 모두 새해의 좋은 조짐을 과학영농을 통해 현실화하여 꼭 풍년을 만들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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