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장’으로 식품명인 지정받은 한안자 씨

<100년 묵은 간장 독을 열어 맛을 보이는 한 명인.>

 

‘동국장’은 순수한 한국된장·간장이란 뜻
“조미식품 개발하는 게 마지막 남은 꿈”

남도 중에서도 가장 남도다운 곳, 남해 푸른바다에 한 발을 텀벙 담그고 나앉은 형국의 반도 끝자락 해남땅도 폭설과 칼바람 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목포·영암을 휘돌아 해남의 황산면 소재지에 들어서자 알록달록한 플래카드가 이마에 닿듯 눈에 들어왔다. ‘축 명인지정-한안자 여사’ 차에서 내려서자 열병하듯 줄지어선 장항아리가 보이고 후끈하니 구수한 메주콩 삶는 냄새가 얼굴에 확 끼쳤다.
이곳이 한식된장과 한식간장을 아울러 이르는 ‘동국장’제조·가공 기능으로 전통식품명인(제40호)에 지정된 한안자(韓安子·71) 장인의 공방이자 사업장인 귀빈식품(전남 해남군 황산면남리리28 소재)이다.

걸걸한 남도 말씨며 걸음걸이 품이 영낙없는 여장부 인상이다. 칠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건강미도 넘친다.
-앉아서 장이나 오물조물 빚을 것 같지 않은 인상이십니다. 장과 인연을 맺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으셨습니까?
첫인상 얘기에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거침없이 말문을 열었다.
“얘기 하자면 길어요. 우리 친정집안은 조선조 때의 왕후였던 인수대비의 후손으로 청주 한씨 가문 중에서도 광주 사직동에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해 특별히 사직촌 한씨라 불렀는데, 아버지(韓麟敎)가 그 30대 손이지. 어려서부터 어머니께서 한씨 집안 고유의 전통장 담그는 모습을 보아왔으니 몸으로 익혔다고 할 수 있지만, 그땐 솔직히 그런 일엔 도통 관심이 없었어요. 꿈이 좀 컸었거든…”
그런 야무진 꿈을 가지고 광주여고를 거쳐 어렵사리 조선대 가정교육과에 진학해 2년 과정을 마치고, 송도고·대구사범을 나와 교장으로 봉직하고 있던 부친의 영향으로 5년간 국민학교 교사를 하다가 26세 되던 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집안 어른들끼리 얘기한 결혼이라서 신랑 얼굴도 못보고 시집 왔어요. 이곳 해남 황산에서 천석꾼 집안이었는데 시름시름 살림형세가 줄어들고, 방앗간(지금의 도정공장)만 남았으니 몸 마음 고생이 왜 없었겠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장만들고 철철이 나는 농산물로 밑반찬 만들어 팔아보자는 거였지.”

-동국장이라는 이름이 궁금합니다. 혹 제조기법이 남다른 데서 유래한 것인가요?
‘그런 건 아니고 옛 문헌에 중국사람들이 된장·간장은 동쪽나라에서 담근다하여 명명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어요. 흔히 조선간장, 조선된장 하고 부르는 것을 조선이란 단어 이미지가 싫어 한(국)식 된장, 한(국)식 간장이라 붙인 거지. 동국장 만은 유독 발효균이 그대로 살아있는, 말하자면 생(生) 된장·간장 이에요.”

-제조방법이 특별히 다른가요?
“일반 된장·간장과 담그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물론 꼭 국산콩(대두)을 쓰고, 삶을 때 물 조절과 불조절을 잘 해야 해요. 물은 딱 한번, 콩과 물의 비율을 1:2로 해서 장작불로 삶아야 제 맛을 살릴 수 있지.”
그 다음에는 동글 납작한 모양과 작은 벽돌 모양으로 성형을 해 볏짚이 아닌 통대나무 선반 위에 얹어서 말리는 것도 그 만의 독특한 증자방법이다.
그 다음에는 소금의 선택. 소금은 꼭 이 지방 고천암 해안가 염전에서 생산하는 3년된 천일염을 쓴다는 것. 그렇게 해서 잘 뜬 메주가루와 소금물을 섞어 오지항아리에서 60~90일간 은근한 온도(18℃정도)에서 숙성시키는 것이 생된장·간장인 동국장이다.
잘 발효된 동국장을 보면, 흡사 진한 커피색에 메주 덩어리가 뭉글뭉글 흩어져 있는데, 흡사 흔히 얘기하는 ‘왜간장’을 섞은 양념간장 같은 독특한 맛이 난다.

-그대로 밥을 비벼먹어도 좋을 정도인데, 혹 발효과정에서 다른 첨가물 같은 건 안넣나요?
“일체 안 넣어요. 앞에서 말했듯이 콩 삶는 것, 물 배합, 메주 숙성시키는 것, 소금선택, 적정 온도에서의 발효, 이 모든 게 기막히게 맞아 떨어져야 비로소 동국장이 되는 거요.… 내 옆에서 한 3년 열심히 익히면 아마 누구나 담가먹을 수 있을 거야. 하하…”
그러나 그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겠는가. 이제 50년 가까이 장을 빚다 보니 이제는 ‘눈으로 장맛을 본다’고 했다.
그런 그의 각고 끝에 1992년 귀빈식품을 설립해 그 이듬해 농림부로부터 전통식품품질인증 마크를 획득하고 그의 장부같은 배포 하나로 대형 백화점 입점에 성공해 최고 장류브랜드로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연간 매출은 200종에 가까운 밑반찬류까지 포함해 36억 정도 된다고 했다.

-이제 명인 지정도 받으셨는데, 또 남은 할 일이 있으십니까?
“동국장은 딸아이(박홍령·43)를 전수자로 해서 20여년 됐으니 잘 지켜갈 것이고, 소금·참깨·참기름·장(된장)·식초·액젓·청국장·깨묵장·볶음고추장으로 조미식품을 개발하는 게 나의 마지막 과제야. 약전에 음식이라고 발효식품이 중요하고, 모든 음식조미의 기본이 장인데, 그저 매식을 일삼는 게으른 주부들을 보면 한심해 보여…”
이순신·세종대왕·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배포를 존경한다는 한 명인에게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저 나라가 잘 됐으면 좋겠고,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것, 그것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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