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辛卯年) 토끼해에 들어보는 토끼이야기

2011년 새해는 신묘년, 토끼해이다. 12간지 중 네 번째 동물이다. 예부터 토끼는 작고 선하며 영특한 동물로 여겨져 많은 설화와 민화, 그리고 동요·동시의 소재가 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놀라운 번식력을 가진 동물이어서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사대부가(家) 안방마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도 했다.

# 토끼의 상징
토끼는 12간지 중 호랑이 다음으로 네 번째 동물(卯)인데, 월력으로는 2월, 시간으로는 오전5~7시를 가리킨다. 음력 2월은 농촌에서 농사가 시작되는 달이고, 묘시(卯時, 오전 5~7시)는 농부들이 논밭으로 나가는 시간이어서 다산과 아울러 성장과 풍요를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음력 정월의 첫 묘일(卯日)인 토끼날은 상묘일(上卯日)이라 하여 특히 이날을 ‘톳날구기’라고 불렀다. 이날은 남의 여자가 자기 집에 와서 오줌을 누면 좋지 않다 하여 여자들의 바깥나들이를 삼갔으며, 아침에 남자가 대문을 열어야 집안이 평안하다고 믿는 속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토끼날에 실을 짜거나 옷을 지으면 무병장수한다고 하여 규방의 인기를 독차지 했다. 이러한 이미지 탓에 특히 공예품의 소재로 많이 쓰였는데, 우리나라 국보 제95호인 청자칠보투각향로의 받침이 토끼상이고 연적으로도 토끼형상이 많이 만들어졌다.

# 설화 속의 토끼
우리 조상들은 토끼가 주는 순결함과 평화로운 이미지 때문에 일찍이 이샹향에 사는 신비로운 영물로 그렸다.
달을 무한히 동경한 나머지 달의 분화구 모습을 보고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방아를 찢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맹랑한 상상의 세계는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간 닐 암스트롱이 달을 밟으면서 산산조각이 났지만, 그래도 옛 사람들의 노래나 민화 속에는 여전히 환상의 세계에 사는 동물로 살아 숨쉰다.
흔히 우리 전통 민화를 보면, 해(日)는 곧잘 발이 셋 달린 까마귀(삼족오, 三足烏)로 그려져 있고, 달(月)은 토끼로 그려져 있다. 민화 속에서 토끼는 달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래서 암토끼는 수컷이 없어도 달과 교합하여 새끼를 낳는다는 속설도 있다.
또한 토끼는 달나라의 어두운 밤에도 방아를 찧을 만큼 눈이 밝아 토끼 눈을 명시(明視)라고도 했다.
서양사람들도 토끼를 달의 정령(the vital essence of the Moon)이라고 했고, 장수의 상징(an emblem of longvity)으로 여겼다.
우리의 대표적인 판소리계 고전인 <토끼전> 혹은 <별주부전>, 혹은 <수궁가>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구토설화를 제재로 한 우화소설이다. 구토설화의 근원이 된 <삼국사기>의 김유신 열전에 보면, 김춘추가 백제에 복수하기 위해 고구려에 청병을 요청하러 갔다가 오히려 고구려 옛 땅을 반환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볼모로 붙잡히는 신세가 된다.
그때 김춘추는 고구려에서 탈출하기 위해 고구려 신하인 선도해(先道解)에게 술대접을 하게 된다. 이때 술에 취한 선도해가 김춘추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토끼와 거북이>설화였다.
그 얘기를 듣고 김춘추는 얘기 속 토끼의 지혜를 빌어 고구려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판소리에서 흔히 <수궁가>로 불리는 <별주부전>은 영물의 찬사를 받을 만한 토끼의 지혜가 듣는 이의 무릎을 치게 한다.
바닷 속 용궁 용왕의 딸이 몹쓸 병에 걸렸다. 이때 육지에 사는 토끼의 간이 특효명약이라는 얘기를 듣고 만조백관을 불러 뭍에 사는 토끼의 간을 어떻게 구해 올 것인가를 논의한다. 논의 끝에 자라(별주부)가 뽑혀 특명을 받고 토끼 화상 그림을 품에 넣고 뭍에 오른다.
이윽고 그림과 같은 화상의 토끼를 만나게 되고, 감언이설로 토끼를 유혹하여 용궁으로 데려온다.
그제서야 토끼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자 순간 꾀를 낸다. 자신의 간을 노리는 자들이 많아서 평소에는 늘 간을 바위틈에 숨겨놓고 다닌다고 둘러대 뭍으로 빠져나오게 된다는 얘기다.
간혹 간교한 꾀돌이로 토끼가 그려지는 것은 이러한 설화 속 이미지 때문이다.

# 토끼 생태와 속담
토끼는 생태학적으로 묘하게도 원숭이 엉덩이를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눈 색깔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원숭이와 토끼가 한 우리 안에서 같이 사는 법이 없고, ‘묘신원진(卯申怨嗔)’이라는 성어가 나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가 하면 돼지의 분비물냄새와 힘을 부러워 하고, 양의 능청스러움을 태연히 받아들이는 속성도 가지고 있어 해묘미삼합(亥卯未三合)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로 토끼의 코가 돼지 코와 양의 코를 반반씩 닮아 성격도 돼지의 우직함과 양의 건방진 자존심을 함께 가졌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가 길몽을 꿈꾼다. 토끼 꿈은 두 가지로 흔히 해몽된다.
토끼는 생체학상 앞발이 짧고 뒷발이 길어 오르막을 잘 올라간다. 그래서 토끼 꿈은 승진운을 의미한다. 그러나 토끼의 윗입술이 세로로 찢어져 있어 태몽으로 꾸면 언청이 자식을 낳는다는 속설도 있다. 그래서 악몽을 꾸었을 때는 소금을 문 밖에 뿌린다.
토끼는 설화만큼이나 속담에도 많이 등장한다. 깊은 잠을 못자고 잠깐 눈을 붙이는 ‘토끼 잠’ ‘토끼가 제 방귀에 놀란다’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가 하나도 못 잡는다’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중국의 고사성어도 있다.
올 한해 많은 어려움을 토끼와 같은 영특한 지혜로 헤쳐나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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