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물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저 멀리 달그림자 시원한 파도소리/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지 않네~라라라 라라라라~♬’
60~70년대 매주말 서울 청량리역을 출발한 경춘선 열차는 통키타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젊은 대학생들의 들뜬 노래소리를 가득 싣고 경춘 호반가를 휘돌아 달리던 ‘낭만열차’였다.
물안개 자욱이 피어오르던 청평호수와 대성리, 어찔어찔 오금이 저려오던 출렁다리의 추억이 아득한 강촌은 당시 대학생들이 첫손에 꼽던 데이트와 엠티(MT)장소였다. 젊은이들의 열기로 한껏 달아오른 경춘선 열차가 강가나 산허리의 조그만 역에 토해내듯 부려놓는 젊은이들의 손에 손엔 갖은 먹을거리로 배가 불룩해진 배낭이며 코펠과 버너 등의 취사용구, 통키타와 야전(배터리로 작동하는 야외용 전축), 그리고 몇장의 포크송 LP음반들이 거의 예외없이 들려 있었다.
요즘 생각으로는 유치해 보이기까지 한 모습이지만, 자랑스럽게 대학배지를 가슴에 달고 다니던 그 당시로서는 소수 선택받은 인텔리들만이 누린다고 생각했던 특권에 가까운 낭만같은 것이었다.
이른 아침 청량리역에서 두시간여를 달려 종착역인 남춘천역에 이르면, 이제 막 새벽안개에 젖은 몸으로 배시시 고개를 들고 깨어나는 ‘호반의 도시’ 춘천을 만난다. 춘천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여행 또한 경춘선이 가져다 주었던 커다란 선물같은 것이었다.
해마다 겨울이면 동계 빙상경기가 열리던 공지천변 이디오피아의 집에서의 그윽한 밀회, 소양호를 가로질러 오봉산에 들어 소슬한 바람에 쓸리는 산사의 풍경소리를 귀에 담아도 보고, 철철 흐르는 계곡의 살찐 쏘가리 매운탕, 소양호의 겨울별미 은빛 빙어회, 그리고 시원한 막국수와 철판 닭갈비 등 맛집 순례를 하는 것 모두가 서울의 아베크족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여행의 즐거움을 안겨다 주었다.
그 경춘선의 무궁화호 철마가 이제는 더이상 달리지 않고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지난 21일 경춘선 전철이 개통되면서 1939년 처음 개설된 이후 71년간 운행되었던 열차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열차가 마지막으로 운행되었던 20일에는 이제는 무지개처럼 저만큼 멀어져간 추억의 끝자락을 잡아보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청량리역사로 몰려들어 좌석표 매진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랴. 청마의 시구처럼 ‘사랑하는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다. 떠나간 열차처럼 오늘, 지금 이 시간도 영원속으로 사라져 간다.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고 또 한해가 간다. 아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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