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십일월은 한겨울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여자들아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동지는 좋은 날이라 양(陽)이 생기기 시작하는구나/특별히 팥죽 쑤어 이웃과 즐기리라/새 달력 널리 펴니 내년 절기 어떠한가.’
다산 정약용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가 지은 월령체 가사 <농가월령가>의 ‘11월령’구절이다. 물론 음력11월이다.
22일은 음력 11월17일로 24절기의 하나인 동짓날이다. 눈이 많이 온다는 대설로부터 꼭 보름 뒤에 오는 절기이고, 한 해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이날이 되면 시절음식으로 팥죽을 쑤어 먹었다. 옛책<동국세시기>에는 팥죽에 얽힌 이야기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동지를 아세(亞歲)라고도 한다. 이 날엔 팥죽을 쑤는데, 찹쌀가루로 새알 모양의 떡을 만들어 그 죽 속에 넣고 꿀을 타서 물을 문짝에 뿌려서 상서롭지 못한 것을 제거한다’
애초 팥죽을 쑤어 문에 뿌리는 속신은 저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초세시기>라는 옛책의 기록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라는 사람의 아들이 병을 앓다가 동짓날 죽어 역귀(疫鬼)가 되자 그 아들이 살아 생전에 그렇게도 싫어했다던 팥으로 죽을 쑤어 대문과 집안 구석구석에 뿌려 역귀가 침범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잡귀의 접근을 막는 벽사의 뜻으로 문에 양(羊)의 피를 바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붉은 빛깔의 팥죽을 문에 뿌려 액을 물리치려 했던 일종의 민간신앙 같은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조상에게는 팥죽차례를 올리고, 아이들은 새알심이 든 팥죽 한 그릇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제대로 먹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하얀 새알심을 가족 전체의 나이수 만큼 빚어 팥죽 속에 넣었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입춘절 같은 날엔 신사 안에서 문밖으로 콩과 팥알을 흩뿌려 던지며 잡귀를 몰아내는 의식을 행한다.-“귀신은 밖으로, 복은 안으로”하며.
그러나 그런 옛 풍속들은 이제 전설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요즘 사람들은 시때 가리지 않고 재래시장통 목로에서 팥죽을 사먹는다. 동짓날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진빵 속의 ‘앙꼬’ 정도로나 팥이 기억되는 세태다.
그렇듯 시절을, 절기와 그 순리를 잊고 허둥대며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을 생각하면 동짓달 기나긴 밤만큼이나 가슴이 먹먹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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