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웃 ‘다문화가정’ 정착 성공사례- 광주광역시 남구 우연화 씨 가족

 

시어머니·형님내외 모시며 한국가족문화 배워가
서로의 문화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

많은 이주여성들이 낯선 땅에서 언어, 문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정착에 성공한 이들도 많다. 현 위치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우연화씨 가족을 만나봤다.

한국드라마 보며 자상한 한국남편 꿈꿔 
마을회관 옆 자그마한 구멍가게 안에서 맛깔스런 라면향이 솔솔 풍겨 나오며 코끝을 간질인다. 점심때에 맞춰 도착한 구멍가게 안에는 라면을 끓이는 안주인과 점심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낯선 이의 방문에 어리둥절해 하며, 수줍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이는 중국 연길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지 4년째를 맞는 우연화(28·여)씨.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며 라면을 끓이는 모습이 한국 농촌아줌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얼굴은 앳돼 보이지만, 그의 말투와 행동 곳곳에서는 한국아줌마의 전형적인 모습이 비춰진다.
“주경아빠…”라며 남편을 부르는 호칭도 그렇고, 시어머니를 챙기는 모습이며, 농사걱정에 밤잠을 설친다는 말에서 영락없는 촌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제 우연화씨는 남편 김호겸(44)씨와 아들 김주경(4)군이 있는 한국이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제는 한국 사람이 다 됐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어쩌다 한국으로 시집을 다 오셨어요?”라는 기자의 말에 우연화 씨는 웃음을 지으며 “한국이 그냥 좋았어요. 그래서 시집을 왔죠.”라고 대답한다. 한족(漢族)인 그녀는 중국 연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평범한 처녀였다. 그런 그녀가 한국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의 삶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순풍산부인과, 보고또보고 등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한국남자들은 참 자상하고 다정다감하다는 걸 느꼈어요. 무뚝뚝한 중국남성들과는 달라 보였죠. 그래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무작정 한국 언어학원을 다니며 한국으로 시집가려 노력했죠.”
그 결과 그녀는 친구의 소개로 남편 김호겸 씨를 만나게 되었고, 이곳 광주광역시 남구 신장동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     
“막상 한국으로 시집을 오니 드라마에서 보던 한국생활하고는 달랐어요. 새벽부터 일어나 밭일을 시작해야하고 시어머니, 형님내외분, 조카들까지 여럿이 한집에서 생활하며 식구들도 챙겨야하고 암튼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이 많더군요.”
더욱이 무뚝뚝한 남편의 성격 탓에 드라마 속 다정다감한 남편의 모습은 기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결혼한 지 4개월여 만에 남편이 직장암에 걸려 대수술을 하는 등 힘든 신혼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시어머니 최앵두(75)씨는 “며느리가 처음엔 고생을 많이 했죠. 한국생활에 적응하기도 힘든데 남편 병수발에 밭일까지 도맡아 하느라 애썼어요. 더군다나 챙겨야할 식구까지 많아 더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도 싫은 내색 없이 항상 웃으며 생활하는 며느리가 너무나 고맙고 예쁘답니다.”라며 연화 씨에 대한 애틋한 정을 내비친다.

대가족 한국문화 처음엔 낯설어
“한국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냐?”는 질문에 그녀는 의사소통과 한국의 가족문화였다고 말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음식도 안 맞고 의사소통도 어려웠어요. 특히 시어머니하고의 의사소통이 힘들었고, 형님들하고의 관계도 쉽지는 않았죠.”
우연화 씨의 남편 김호겸씨는 6형제의 막내아들로 바로 위 형님내외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시어머니와 형님내외분, 그리고 조카 둘, 거기다 큰 조카까지 합하면 9명의 가족이 한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모여 살지 않아요. 특히 중국은 남편이 가사 일을 잘 도와주는데 한국남자들은 양말 하나도 안 빨죠. 명절 때 음식 장만하는 것도 장난이 아니에요. 그래서 결혼 초에는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식구들이 함께 모여 살며 서로를 생각하고 의지하며 사는 것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그의 한국 정착을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조카들은 틈틈이 한국어선생님이 돼주었고, 형님은 한국 살림과 문화를 알려주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시어머니 또한 먼 타국으로 시집온 연화 씨를 딸처럼 아끼며 그녀를 살뜰히 예뻐했다.
가족들의 든든한 사랑과 관심으로 그녀는 4년 만에 한국생활에 완전히 정착했고, 지난해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이제는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시어머니를 도와 가게를 운영하며 동네어르신들의 말벗도 되어드리고 있다. 이제 동네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주요인물(?)이 되어버린 것. 우연화씨는 할 수만 있다면 다문화 전도사가 돼 어려움을 겪는 이주여성들에게 힘이 되고 싶단다.
“이주여성들이 이 땅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있도록 힘이 돼 주고 싶어요.”


■  내가 본 우연화씨 가족은 … 김금순 씨

“서로에 대한 배려가 가장 중요해”

한국 젊은 사람들도 시어머니 모시기를 꺼려하는데 연화 씨는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형님내외를 함께 모시며 참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건강이 좋지 못한 남편을 대신해 적지 않은 농사일을 거뜬히 해내고, 대가족 살림을 불평 없이 해나가는 것을 보면 대견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처럼 불편한 것이 없는데 이 가족의 관계는 오히려 엄마와 딸처럼 서로를 아끼며 살아간다. 아마도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있기에 가능한 것 같다. 시어머니는 먼 타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연화 씨를 안타깝게 여겨 사소한 실수라도 귀엽게 봐주고, 연화 씨 역시 친정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시어머니를 부모님처럼 살뜰히 모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농촌에는 지금 수많은 이주여성들이 시집을 와 생활하고 있다. 언어, 문화, 생활습관의 차이로 힘들어하며 남편,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몇 십년 씩 각자의 삶을 살아오던 남녀가 부부의 인연으로 만났으니 얼마나 많은 문제가 생길까. 더군다나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온 다문화가정의 경우 갈등은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화씨 가족처럼 서로에 대한 배려로 문화를 존중한다면 행복한 다문화가정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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