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올해에 우리나라에 와서 공연을 한 적이 있는 흑인 싱어송라이터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1950~)는 잘 아는바와 같이 맹인이다. 미국 미시간주 출신인 그는 체중 미달의 저체중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들게 되었는데, 이 때 산소 과다공급으로 눈의 망막을 상해 시력을 잃게 되었다.
어렸을 때 그의 이름은 ‘리틀원더(Little Wonder)’. 흑인·가난·장님이라는 극한의 콤플렉스를 가진 이 소년을 보고 주위에서는 기껏해야 주전자 만드는 일이나 할 수 있을 거라며 비아냥 거렸지만, 이 아이는 이름처럼 놀라운 작은 기적을 만들어 갔다. 주전자 대신 하모니카를 잡고, 피아노·오르간·드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천부적 재능을 보여주며 12살 때인 1963년 모타운레코드사를 통해 팝계에 데뷔하게 된다.
스물세살 때 교통사고로 후각까지 잃게 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매진해 월드팝스타의 반열에 우뚝 서, 지구촌 사람들은 그를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전형’으로 첫 손에 꼽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대표히트곡 는 전세계에서 1억장 이상 팔려 나갔다.
지금으로부터 꼭 121년 전에 태어났던 런던 출신의 미국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 (1889~1977) 역시 소년시절의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무성영화 시대에 특유의 콧수염과 실크햇, 모닝코트 혹은 헐렁한 멜빵바지에 지팡이 차림을 하고 엎어지고 자빠지는 우스꽝스러운 몸짓 만으로 관객을 웃기고 울려가며 슬랩스틱 코미디 분야를 개척한 대스타였다. 세계적인 팝스타 마돈나는 십대시절 한조각 빵을 위해 포르노배우 일을 하기도 했으며, 우리나라의 조용필은 1980년 <창밖의 여자>가 뜨기 전까지는 폐병으로 가슴앓이를 하며 부산의 밤무대에서 무명의 한을 곱씹으며 어렵게 지냈었다. 학창시절에는 왕따를 당해 마음고생을 하고 사회에 나와 휴대폰 외판원을 하다가 영국의 한 TV프로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우승해 일약 스타가 된 팝페라 가수 폴 포츠는 젊은이들달에게는 이미 ‘전설’이 되어 있다.
최근 한 음악 케이블채널의 <슈퍼스타K2>란 프로에서 우승한 스물다섯 살의 허각이란 청년이 젊은이들간에 대단한 화제가 되고 있다. 중학교 졸업 후 진학을 포기하고 쇼핑몰과 백화점 이벤트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벌었고, 생계를 위해 아파트 공사장에서 붙박이 가구를 설치하거나 건물 천장에 환풍기를 설치하는 배관공사 일을 하면서도 결코 노래만은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눈물어린 전력에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진 것이다. ‘한국판 폴 포츠’란 별칭도 그래서 얻었다. 그는 “꿈을 꿀 수 있게, 그리고 이제는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준 게, 또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게 노래”라고 했다.
 대중의 스타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그처럼 그렇게 꿈꾸고, 그 꿈을 이루려는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의 별’따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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