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만금(萬金)을 손쉽게 얻은 허생(許生)은 집에도 가지 않고, ‘안성은 경기도와 호남의 갈림길이고 삼남의 요충이렷다’하면서 그 길로 내려가 안성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다음날부터 그는 시장에 나가서 대추·밤·감·배·석류·귤·유자 따위의 과일이란 과일을 모두 거두어 샀다. 그리고 사는 대로 한정없이 곳간에 쌓아 두었다. 이렇게 되자 오래지 않아서 나라 안의 과일이란 과일은 모두 바닥이 났다. …과일장수들은 이번에는 허생에게 달려와서 과일을 얻을 형편이 되었고, 허생은 저장해 두었던 과일들을 10배 이상의 값으로 팔았다. 허생은 탄식했다. ‘허어, 겨우 만냥으로 이 나라를 기울게 할 수 있다니 국가의 얇음을 알 만 하구나!’
과일을 다 처분한 뒤 그는 칼·호미·무명·명주·솜 등을 모조리 사가지고 제주도로 건너가서 그것을 팔아 이번에는 말총이란 말총은 모조리 사들였다.
‘몇 해 못 가서 나라안 사람들은 상투도 싸매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이렇게 허생이 장담한 대로 얼마 가지 않아서 나라 안의 망건 값이 10배나 뛰어올라 말총을 내다 파니 백만 금이 되었다.-
연암 박지원이 소설<허생전>에서 주인공 허생이 매점매석(買占賣惜)으로 폭리를 취하는 작태를 그린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소설속 얘기같은 모리배(謀利輩)에 의한 물가폭등이 조선조 때에도 빈번하게 일어나 조선 조정이 골머리를 앓았다.
‘요즈음 도읍의 쌀값이 크게 올라 백성들의 삶이 편안하지 못하다. 비록 작년에 이어 흉년이 들었지만 나라의 곡물이 전에 비해 배로 줄어들었다. 서울 안팎과 한강변의 부자상인 무리들이 모두 미곡을 쌓아 깊이 감추고는 내놓지 않고 반드시 값이 최고로 올라갈 때를 기다려 열 배의 이익을 취하려 하니 곡물가격이 날로 오른다…’(비변사등록, 정조3년 1월10일)
경제원리 대로라면 당연히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올리는 것이 장사의 이치다. 하물며 밑지고서야 어떻게 장사를 하겠는가. 최근 널뛰기 장세를 이어가 서민들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는 ‘배추대란’을 지켜 보노라면, 행여나 저 뒷전 어딘가에 매점매석으로 폭리를 취하려 드는 모리배들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정부가 뒤늦게 유통구조를 혁신하겠다고 부산을 떠는 게 그런 속 편치 않은 상황이 있음을 반증하는 건 아닐까. 죽기살기로 제 잇속만을 채우겠다고 덤비는 모리배들의 그 파렴치함을 어떻게 단죄하겠다는 건지 되레 답답해지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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