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윤 배 시인

김 윤 배
시인
고려대대학원·인하대 강사

 

문순우는 고랭지 채소밭에 버려진 배추잎의 앙상한 줄기들을 수직의 앵글로 찍어 보여줌으로써 농민들의 고통을 웅변으로 전해준 사진작가다. 그의 배추사진은 카메라 렌즈가 아니라 가슴으로 찍은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다면 사진 한 장의 충격이 그처럼 클 수가 없는 것이다. 가격 폭락으로 수확을 포기한 고랭지 배추는 혹한의 겨울을 견디며 줄기들만 하얗게 남아 밭두둑에 그대로 얼어붙어 있어 육탈된 뼈의 앙상한 모습이다,
밭두둑에 순백으로 누워 있는 순결한 배추의 앙상한 뼈들은 이미 배추의 잎맥이 아니다. 그 뼈들은 농민들의 앙상한 갈비뼈다. 배추값 폭락으로 일년 농사를 망쳐버린 농민들의 앙가슴이다. 폭염 아래 파종을 하고 뵈게 난 어린 싹을 솎아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거름을 주며 마치 자식 기르듯 길러낸 배추였다. 배추 잎새마다 햇살이 들어가 살았고 시원한 바람이 뼈마디를 굵게 했다. 고갱이가 앉고 가슴이 벌고 우람한 모습을 한 배추는 농민들의 웃음이었다.
그렇게 기른 배추를 가격폭락으로 갈아엎고 싶었던 농민들이었다. 차마 갈아엎지 못하고 수확을 포기한 농민들은 한숨으로 밭고랑을 채웠다. 밭두둑에 버려진 배추가 겨울을 어떻게 견디었는지는 문순우의 사진을 보면 알게 된다. 그의 사진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배추값 폭등과 폭락사이
요즘 배추파동이라고 난리들이다. 배추값이 천정부지로 뛴다고 중국산 배추를 황급히 수입하고 평소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수입배추를 수십 미터 씩 줄지어 서서 구매한 주부의 다행스러워 하는 표정을 TV로 본다. 문순우의 사진을 본 사람이면 배추값이 좀 올랐다고 이 난리를 치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배추값이 오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가격폭락으로 수확을 포기했던 농민들에게 하늘이 주신 보상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폭등한 배추값은 농민들의 몫이 아니고 중간상인들의 몫이다.

정부와 농협의 몫
배추값은 작황과 재배면적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고 폭락과 폭등이라는 널뛰기를 하는 것이다. 이제는 배추값이 진정돼 가고 있다. 그러나 김장 배추값이 폭락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니 내년에 다시 배추값이 폭락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배추값이 이처럼 널뛰기를 하는 데는 유통구조와 언론의 부추김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배추밭은 파종과 동시에, 경우에 따라서는 파종도 하지 않은 밭을 미리 사버리는 업자가 있는 것이다.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편이 수입에 있어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매점매석의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유통과정이 왜곡되면서 가격의 폭등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가격이 폭등한다고 해서 농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배추값이 상승하기 시작하면 언론 매체가 선정적으로 보도하면서 불안감이 조성되고 사재기가 이루어져 가수요가 발생한다. 배추값이 더 오를 것을 기대하는 중간상인들은 출하를 미루고 배추값은 정말 더 오르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먼저 농협의 역할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모든 배추농가와 농협이 계약재배를 함으로써 재배면적의 적정성을 유지하고 농협은 이를 계통적으로 출하해 가격의 폭락과 폭등을 억제하는 것이다. 또한 거대한 조직을 배경으로 직판장을 개설해 중간마진을 없애는 것이다. 유통이 단순화되고 산지가격과 소비자가격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농민들에게도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일 것이다.
이제 배추파동은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진정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농업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배추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영농비도 건지지 못하는 불합리한 가격이 형성되는 것을 막아줘야 할 책무가 정부와 농협에 있다. 배추 가격 폭등으로 가계에 주름이 가는 국민들이 없도록 하는 책무 또한 정부와 농협의 몫이다. 그렇게 되면 농민들의 가슴도, 문순우의 가슴도 따뜻해질 것이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