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만약에 발가벗은 스웨덴·프랑스·미국여성을 우연히 만났다고 치자. 그녀들은 맨먼저 손으로 치부를 가릴 것이다. 아랍여성이었다면 맨먼저 얼굴을 가릴 것이고, 중국여성이라면 발을 가릴 것이요, 남태평양의 사모아여성이라면 먼저 배꼽을 감추려고 할 것이다.’
월레스라는 작가가 그의 소설 <노벨상>에서 얘기한 것이다. 그는 나체가 되었을 때 여성의 수치심은 그냥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사회적인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만약 개화기 이전에 알몸인 한국여성을 마주치게 됐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아랍여성처럼 허겁지겁 두손으로 얼굴을 가렸을 것이 분명하다. 이슬람문화권의 여성들처럼 얼굴을 가리고 외출해야만 했던 그 당시의 한국여성들이 얼굴을 보인다는 것은 구미사람들이 치부를 보인다는 것 만큼이나 큰 일 이었기 때문이다.
옛날 조선의 여인들이 외출할 때에는 쓰개치마(장옷)를 말 그대로 머리에 쓰고 눈만 빼꼼히 내놓았다. 얼굴 뿐만이 아니라 발등까지 덮는 이 쓰개치마를 언제부터 입게 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한국 유교가 도학으로 깊어지면서 그와 비례해 여성들의 육체 은폐가 강조되고, 애초 얼굴만을 감싸던 것이 차츰 길어져 맥시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도학이 들어온 고려말에는 여성이 외출할 때 삿갓모양의 입모(笠帽)를 쓰고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어린아이들과 함흥·북청지방 여인들은 젖가슴을 덮을 정도의 천의(薦衣)라는 쓰개치마를 입었고, 평양·해주지방에서는 쓰개치마 대신 쌀 까부는 키나 삼태기 같은 큰 갈대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그러던 것이 개화기에 접어들면서 이 쓰개치마는 차츰 미니화 했고, 개화기 이후에는 쓰개치마가 사라지고 우산을 쓰고 바깥나들이를 했다. 그 무렵 여학교 학생들이 소풍을 갈 때는 자신의 발등만 보면서 우산을 받고 가는 웃지못할 장관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같은 쓰개치마의 변천은 곧 여권신장을 가늠하는 척도로 학자들은 얘기하고 있다.
올해들어 유럽에서 우리의 옛적 쓰개치마와 같은 이슬람 전통복식인 부르카와 니캅 착용을 금지하는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부르카는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모든 부분을 가리고 시야확보를 위해 눈부분만 망사를 사용한 이슬람 전통복식으로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이라크 여성들이 착용한다. 눈부분에 망사가 없는 니캅, 얼굴을 드러내면서 머리전체를 감싸는 일종의 스카프 형태의 히잡, 얼굴부분을 빼고 몸 전체를 가리는 외투형태의 차도르 등도 무슬림의 전통복식인데, 유럽인들은 특히 부르카를 여성인권 유린과 탄압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간남자와 정 나눴다고 코 베고 돌로 쳐죽이는 일이 그 베일 속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쓰개치마를 일찌감치 벗어던진 우리 한국의 여인들은 그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