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오 경 자
수필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법규위원장


농사는 같이, 소득은 혼자?
“농촌에는 남자가 없어요, 온통 여자들과 노인들 뿐이에요.”
어제 오늘 들어온 이야기가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젊은 사람은 도시로 나가고 노인들만 남아있고 노인 인구 중에는 여성 비율이 높다 보니 그런 말이 헛말이 아니다. 젊은 부부가 농촌을 지키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어 반가운 일이기는 하나 아직도 남자들은 일터를 찾아 도시로 나가고 여성들이 농촌을 지키는 중심그룹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전통사회에서는 농업경영권이 남성에게 독점되어 있었다. 여성들이 밥해내고 김매고 하면서 농사를 지어도 그 주도권이 남성에게 있다 보니 농업소득의 전권이 남성에게 쥐어져 있었다. 가부장제 하에서의 당연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성은 텃밭에서 가꾼 양념류와 채소류 정도, 즉 일상 찬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의 농작물에 대한 관할권만이 여성에게 귀속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콩, 깨 고추, 마늘, 배추, 무, 가지, 상추, 오이, 호박 등이 자가소비 수준의 소량의 농사로 이루어질 때는 당연히 여성이 주도권을 갖고 재배하고 소비하고, 농업 경영권과 소득에 대한 사용권과 분배권이 여성에게 주어지는데 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똑같은 작물이라도 그 양이 많고 주 생산품의 위치에 이르면 그 농업 경영권과 주도권 즉 소득에 대한 관할권이 전부 남성에게 귀속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고 또 그렇게 운영돼 왔다. 이런 결과로 여성은 농촌에서 애쓰고 농사를 지어도 경제적 측면에서는 항상 주변인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현상은 여성이 주로 농촌을 지키는 현재도 비슷한 상황으로 남아있다.

농촌여성의 제몫 찾기
예를 들어 보면 고추 주산지의 경우 고추 경작에 대한 농업 경영권이 남자에게 있다는 말이다. 얼마만큼의 면적에 어떤 종자를 파종할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세부적 문제까지 남성들이 결정짓고 여성은 임금 없는 일꾼으로 일할 뿐이다. 그럴 때는 가족으로 설명되는 부분이 고추를 팔아서 소득이 들어올 때는 남성의 것으로 간주되어 여성은 남성이 주면 쓰고 안주면 사정해서 타서 써야 되는 도시 봉급생활자의 아내와 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이것은 문제가 있다. 공동생산자로서의 지위라도 누려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남성의 횡포가 이유라기 보다는 여성자신들의 제몫 찾기 의식이 없다는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여성은 종속적인 지위에 잘 길들여져 온 수천 년의 역사 때문에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알 필요도 없이 잘 체득되고 체질화되어 있어서 그런 일이 전혀 낯설지 않다는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이제 달라져야 한다. 여성의 제몫 찾기가 이뤄지도록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여 온지 오래지만 고용 현장의 경제평등에만 신경을 써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제 농촌여성들의 경제평등을 실현시키기 위해 본인들도 노력하고 사회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수확의 기쁨을 누릴 때 여성이 가슴 어딘가가 텅 비어오는 허탈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행복한 가정도, 돌아오는 농촌도 헛구호에 그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양성이 함께 손잡고 일하고 사이좋게 서로의 가치를 존중해줄 때 참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쪽 성이 다른 쪽 성을 지배하거나 위에서 지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부장제 사고에서 이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그런 것에서 벗어 난지 언제인데 무슨 잠꼬대를 하고 있느냐고 힐책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이미 그런 상황에서 탈피했다고 보는 것은 착각이고, 아직은 환상이다.
농촌여성들의 경제평등 실현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줄 필요가 있다.  숲에 있으면 숲이 안보이지만 숲 밖에서는 숲이 보이듯이 밖에서 도와야 한다. 이제 농촌여성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농촌 여성을 더 이상 주변인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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