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낙엽이 쌓이는 날/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낙엽이 흩어진 날/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 드려요/낙엽이 사라진 날/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시인 고은(高銀)의 시 <가을편지>전문이다. 이 시는 음유시인과 같은 분위기로 호소력 짙게 노래부르는 가수 이동원의 노래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가을이 창밖에 서성이는 이맘때 쯤에 한번쯤은 입안에서 흥얼거려 가며 옛적 그 어느때인가 무지개처럼 영롱하게 피어 올랐다가 아스라이 사라져 간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더듬어 추억하게 하며 가슴 시린 애잔한 감상에 젖게 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생명파 시인 청마 유치환이 평생의 정인(情人)이었던 여류시조시인 이영도에게 애틋한 그리움을 담아 그려낸 위의 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처럼 두 시인은 평생을 그렇게 그리운 마음을 편지에 담아 주고 받았다.
우체국과 우표와 전보지…그런 단어들이 지금 세상에서는 왜 그리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통신제도를 도입해 처음으로 우편행정관서인 우정총국을 세운 게 1884년(고종21)이었으니 130년도 채 안되었는데도 통신수단의 급속한 발달로 편지는 그야말로 박물관 속의 케케묵은 고대유물처럼 되어버렸다.
 이런 마당에 우정사업본부가 전국편지쓰기대회를 해마다 열어오고 있고, 올해의 대상 수상자인 임영자씨의 편지글이 가슴 찡한 감동을 주고 있어 화제다.
‘사랑하는 어머니께./어머니, 글도 모르시는 당신에게 40년 만에 처음으로 글을 드립니다./어머니,어머니란 이름만 입속으로 되뇌어도 가슴이 미어지고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어 홀로 가슴을 움켜쥡니다…’로 시작되는 그녀의 편지는 선천성 소아마비인 자신을 키워내고 지금은 중풍과 치매로 기억조차 잃어버린 자신의 70대 홀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감사의 마음을 담고 있다.
편지란 그런 것이다. 보낸 이의 마음이 받아보는 이의 무한 상상과 감동으로 다가오는 사유(思惟)의 메신저다. 그걸 잃고 사는 우리는 모두가 정신적 절름발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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