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도 현 시인


이가을...시인을 만나다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온 날이다.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이 맹렬했던 더위를 바람이 밀어내서 창문을 걸어 닫고 잠을 청해야 했던 밤의 다음날이었다. 멋과 맛의 고장인 전주 우석대학교로 안도현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 역시 상큼한 가을 바람 냄새가 났다. 가을과 시인, 환상적 궁합의 단어는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찬바람이 불기 시작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떠올린다. 연탄의 따스함이 벌써 그리워지는 걸까? 이 시의 작가 안도현 시인은 30대 중반까지 연탄불 때는 집에서 살아서인지 연탄에 대한 추억들이 많다고 했다. 연탄은 참 쓸모 많은 존재였음을 추억했고, 심지어 운동화도 말리는 역할까지 담당한 고마운 존재였다고 들려준다. 겨울밤, 자고 일어나면 신문지상에 연탄가스로 죽은 사람들에 대한 보도가 심심찮았던 가슴 아린 기억의 파편도 있다.
“연탄은 연탄으로 태어나서 최선을 다하고 살지요. 심지어 연탄재가 되어서도 미끄러운 빙판길을 안전하게 지켜주는...그래서 참 고마운 존재죠.”
시인은  연탄이라는  일상적인 소재의 시로 감동을 불러일으킬 만큼  평범한 생활 속 소재로 감동을 주었고 연탄을 나무처럼 고마운 존재로 부각시켰다. 
“사실 ‘너에게 묻는다’ 의 ‘너’는 글을 읽는 독자를 향한  반성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는데...아닙니다. 바로 저 스스로에 대한 자기 주문 같은 것이었죠.”
시인은 힘들었던 해직교사 시절 이 시를 썼다.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 되어서 살아야겠다’는 각오로 자신에게 열정을 다짐하며 마음을 단단히 단련시키는 주문이었노라는 고백이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전라도에서 사는 것
안도현 시인은 경상북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안동에서 초등학교,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고교 시절 백일장을 휩쓸던 문예반 스타였던 그는 익산 원광대로 유학 왔다. 그 학교엔 문예장학생이란 제도가 있고 쟁쟁한 선배 문인들인 윤흥길 박범신 양귀자를 배출한 학교이기도 했다. 대학 시절 ‘서울로 간 전봉준’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다. 시인은 졸업 후 익산의  한 사립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불합리한 교내 구조를 깨고 싶어서’ 전교조에 가입했고, 전교조 탈퇴각서를 거부해 해직됐다. ‘너에게 묻는다’도 이때 쓴 시다.
어찌된 일인지 누가 가지 못하게 막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경상도에서 태어나 전라도에 자리 잡고 사는 일은 아주 드문 일에 속한다. 경상도에서 태어난 시인은 30여 년을 전라도 밥을 먹는 드문 경우다.
“정치하는 사람이 이용하는 것이지,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은 별 불편을 못느끼고 살아요. 오히려 전주는 한 시간 거리 안에 바다와 평야와 심산유곡이 다 있고 음식 재료도 풍부해  맛있는 음식이  많죠. 이곳에서 살며 덤으로 얻는 행복인 셈이죠.”
안도현 시인은 얼마전 ‘냠냠’이란 동시집을 냈다.

‘냠냠’ 2번째 동시집
재미난 음식 동시 40편이 담긴 두 번째 동시집이다.
“시를 쓰는 마음과 아이들의 마음은 크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죠. 최대한 아이들의 마음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시인이 책을 낸다는 것은 자식이 늘어난다는 기쁨과 같아서  부담은 가지만 여간 성취감을 느끼는 작업이 아니란다. 그래서 시인은 요즘 즐겁다.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먹는 것이잖아요. 먹을거리가 넘쳐 나 고민인 시대에 동시를 빌려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어요.”
음식이라는 게 단순히 투정 부리고 욕심 부리는 대상이 아니라고, 우리의 살과 뼈와 피가 되는 귀중한 것이라고.
“지금 아이들에게는 먹을 것이 너무 풍족하고 오히려 넘쳐나서 먹을 거리를 소중히 여기지 않지요. 더구나 먹을거리로 인해 병이 나는 경우도 많아요.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으면서 식습관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동시집으로 밥이 하늘처럼 귀하고 밥 한 숟가락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또 음식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빛깔, 냄새도 음미하며 밝고 건강한 아이들로 자라라는 마음까지 넣었단다.

시를 잘 쓰는 방법...진실을 담아야
시인은 2004년부터 전주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유명한 시인 선생님에게 지도 받는 학생들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에서 볼 때는 그렇지만 실제론 학생들에게 잔소리와 꾸짖음이 많은 선생일 뿐”이라며 웃어넘긴다. 시를 잘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시인 선생님에게 시 잘 쓰는 법에 대해서 질문했다.
“시가 갖추어야 할 가장 큰 요소는 진실입니다. 진솔한 삶을 사는 사람은 다 시인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언어의 기교와 표현력은 학습이 필요한 일이죠. 하지만 시를 쓰기보다 시를 자주 읽었으면 합니다. 학교 졸업 후엔 시와 멀어지지만 시를 내 삶과 가까이 두는 삶이 더 풍요롭겠지요.”
시인은 글 쓰는 즐거움에 대해서는 이렇게 들려주었다.
“사람이 나이 먹으면 희노애락 중에서 희나 낙보다는 노나 애에 물들기 쉬운데 글 쓰는 작업은 세상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어서 항상 설렘을 갖게 해줍니다. 그래서 글 쓰는 게 좋습니다.”
밥을 먹고, 자고, 싸우고, 욕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의 나날에 빗금을 긋는 어떤 생명력을 문학은 요청하므로 언제든지 설레일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게 문학의 자세이며 묘미도 될 수 있단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와 ‘연어이야기’
안도현 시인은 1996년 발간 이후 15년간 무려 110쇄라는 기록을 세우며 매년 5만부 이상 팔리는 ‘연어’의 저자이기도 하다. 올해, 연어의 두주인공 눈 맑은 연어와 은빛연어의 알들이 눈을 뜨고 바다로 나가는 ‘연어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연어이야기’에서도  시인은 새삼 “끈”을 이야기 했다.
“세상을 사는 것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죠. 그렇지 않다면 이쪽 마음이 저쪽 마음으로 어떻게 옮겨갈 수 있겠어요?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하고 또 미워할 수 있겠어요?”
시인은 휴대전화가 없었다. 집에 두고 나와도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대인의 필수품인 휴대폰을 5년 전인가 잃어버린 이후에 안 샀다고 했다. 세상사 기계적인 관계보다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끈을 더 소중히 여기기 때문일까?

“빗방울이 마당을 뜯는 소리는 아파트에선 듣기 힘들고 처마가 있는 곳에서만 들을 수 있지요. 들판이 있는 농촌에서는 하늘을 더 많이 볼 수 있고, 아침마다 풀 냄새도 맡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자연에 가깝고 풀잎에 가까운 삶을 사는 많은 농촌여성들에게 시인은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행복은 우리네 마당 안에 있고 정말 중요한 것은 가까운 곳에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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