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오 경 자
수필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법규위원장


여자, 살기 좋아졌다?

“여자 참 살기 좋아졌어, 여자들 세상이지 뭐.”이런 말들은 이제 신기하게 들리거나 비아냥거리는 소리로 들려서 기분이 상할 것도 없을 만큼 자주 듣는 얘기가 되었다. 그래, 여자가 참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는가? 그렇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  그러면 여자 세상인가? 그것도 그렇다. 다만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하겠다. 양성이 평등하다는 가치 기준을 갖고 보면 그 말은 어림없는 거짓말이고, 가부장적 사고방식의 잣대를 들이대고 보면 그 때는 정답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의 암울했던 여성의 삶의 역사에다 기준점을 맞춘다면 그렇게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도마 끝에 서서 밥 한술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가족 특히 웃어른들과 남편 시중을 해야 하는 것을 아내의, 여자의 본분으로 생각했던 우리의 전통사회에다 초점을 맞추면 밥상에 앉는 것만으로도 황공할 일인데 하물며 같은 상에 둘러 앉아 함께 밥을 먹는 다는 일 자체가 이미 사건이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얼핏 보기에는 우리나라 여성이 양성평등을 넘어서서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을 느낄 정도로 그 지위가 향상되었다고 착각하기 쉬운 현실이다. 아니 여성들 자신이 그런 착각 속에서 현실적으로 별로 오르지도 못한 지위는 까맣게 잊고 달콤한 설탕물 한 수저에 입을 헤벌쭉 벌리고 서서 정작 허기가 지는 현실을 못 느끼는 자가도취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취사 세탁 등 가사 일은 여성만이 해야 되는 일이 아니라 그동안 생산 참여에 있어서의 역할 분담인 것이 오래 동안 지속되어 옴으로써 고착되어 버린 것이지 여성만이 감당할 수 있는 모성 기능과 같은 개념이 전혀 아니다. 이렇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기준에서 오늘의 가정을 들여다보면 여자가 천상에라도 올라앉아 있는 것쯤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우리 의식수준은?
직장 또한 예외는 아니다. 손님이 오면 당연히 여직원이 차를 들고 와서 대접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상식이었던 것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지금도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잠재 의식이 있는 한 그 일을 않고 손님이 들어와도 말끄러미 쳐다보고 앉아 자기 하던 일만 계속하고 있는 여직원이 마치 천하에 배워먹지 못한 여자로 보이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언제적 얘기인데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아직 우리의 의식 수준은 거기가 현주소인데 우리의 이성이 가르치는 척도가 앞서 있어서 거기에 모두 도달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밥 짓는 일은 여자의 할 일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할 일이고 빨래하고 집안 치우는 일도 가족 모두가 할 일이다. 필요에 따라 형편에 따라 역할을 조정하고 나누는 일은 각 가족의 몫이지만 여자니까, 남자니까 하는 것은 그 분담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엄마가 그런 일 하는 것이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 우리 여성의 입장은 크게 변화하지 못할 것이다. 숙명적으로 당연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분담의 개념으로 그 일을 했을 때 보람도 있고 가치도 주어지는 것이다.
여성의 가사노동에 대한 아니 누구에게든지 가사노동의 대가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는 것이다. 가사노동의 대가를 이제 우리도 인정하기 시작해서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혼 등의 경우에 재산 분할의 부분에서 그 값을 정할 때 일정 부분 인정되어지는 정도이기에 우리 의식 속에 당연한 것으로 자리매김 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우리 여성 자신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가사전담이 희생이고 봉사임을 가족들에게 교육시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야박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여성의 경제적 평등을 위해서 그 성공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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