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재  균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장

 

우리나라 역사는 농업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곧 5천년 역사가 농경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어디를 봐도 우리나라처럼 오랜 농업역사를 간직한 나라는 찾기 어렵다. 따라서 당연히 다른 나라에는 농업전문박물관이 드물 수밖에 없다. 일부에선 이런 외국의 경우를 보고 농업박물관의 중요성과 가치를 폄하하기도 하지만 이는 우리의 농경역사를 모르는 소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삶의 뿌리는 농업이고, 정신세계의 원천은 농경문화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를 알기 위해서는 농경문화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거기에는 우리의 역사, 문화, 정서 등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들이 오롯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경문화를 소중히 취급하고 오래도록 잘 보존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당연한 책무이자 역사에 대한 도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농경유물은 한국적인 문화유산
대한민국 농민들의 자긍심의 상징이자 농경문화의 보물창고인 농협 농업박물관에는 5천여점의 귀중한 농경유물들이 소장 전시돼 있다. 1987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 오직 농업의 뿌리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수집한 것이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역사적, 교육적 가치는 관람객들의 반응으로 입증되고 있고 미래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역사의 뒤편에서 묵묵히 이 땅을 지켜온 농민들의 혼과 정신이 깃들어 있기에 그 어떤 화려한 국보급 문화재보다 소중하다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재 하면 먼 옛날 지배세력들이 사용해온 물건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외국의 널리 알려진 유물들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문화사대주의 내지 문화귀족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제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우리의 농경유물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이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문화유산인 것이다.
우리의 전통농기구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다른 나라에선 찾기 힘든 협동정신이 녹아 있는 도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가령 여럿이 줄을 잡고 일을 하는 ‘가래’라든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물을 퍼올리는 ‘맞두레’, 한국에만 유일하게 존재한다는 ‘두다리 디딜방아’ 등을 들 수 있다. 김매기나 길쌈 등에도 ‘두레’ 라는 협동조직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을 정도로 우리 민족은 ‘협동민족’ 이었던 것이다. 농경유물이 이런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처럼 농경유물은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과 삶의 지혜를 선물하고 있다. 또 농기구 변천과정을 보면 옛 농민들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해 왔음을 볼 수 있다. 벼농사의 북한계를 북위 38도에서 50도까지 북상시킨 민족이 우리 조상이라 하지 않는가.
옛 농촌에서 여성들이 사용했던 생활도구들에도 삶의 지혜는 묻어난다. 농촌여성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기에 이것들은 여성들의 생활상과 문화를 읽을 수 있는 결정체다. 삶의 고단함이 서려있는 재래식 부엌이나 억척과 끈기를 품고 있는 김쌈도구들,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나간 역사속의 모습들이지만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막중하다. 우리의 과거를 이만큼 간직한 도구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농경문화에 대한 인식전환 필요
흔히들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문화가 부국의 원천이라 하면서 나라마다 문화상품 개발에 힘쓰고 있다. 우리 고유의 농경문화가 이미 시작된 문화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 줄 확실한 재료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경문화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외국인들의 놀라움과 부러움 때문이 아니다. 후손들에게 역사의 죄인이 돼서는 안 된다. 눈앞의 이익에 밀려 농경문화의 보존과 관리를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쟁기, 지게, 호미 등 우리 전통농기구들이 국보·보물 등 국가문화재로 지정돼 대접받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 문화강국으로의 국격을 높이고 문화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농경문화의 가치를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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