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영화관 허리우드클래식 김은주 대표

 

노인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노인문화 만들어
실버영화관을 노인들의 문화 오아시스로 만들고 싶다

‘추억과 그리움은 아름다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짓게 한다’ 실버극장 허리우드클래식 포스터의 구절이다.
 지하철 5호선 종로3가 5번 출구로 나서면 낙원상가 건물이 보인다. 오른쪽 옆에 탑골 공원이 있고 해장국으로 유명한 골목사이를 들어서면 그 옛날 추억의 명화 포스터들이 붙어있는 게시판이 보인다.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더티 댄싱, 그리고 벤허 등의 포스터가 반갑다. 바로 허리우드클래식 극장 앞의 풍경이다. 4층의 영화관에 들어서면 극장 대표가 직접 나와서 머리 숙여 관객을 맞이하고, 안내데스크에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앉아있다.  허리우드 클래식은 극장 최초로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으며 어르신들의 더욱 다양한 문화공간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숨은 노력의 주인공 허리우드클래식 김은주(37) 대표를 만나봤다.

마음으로 보는 영화관
“어르신들이 희망입니다. 지금 저 어르신들의 삶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미래 모습이니까요.”
우리나라 유일의 실버극장인 허리우드 클래식 김은주 대표는 이 일을 하면서 갖게 된 신념을 또박또박 얘기했다. 대표라는 직함에 어울리지 않게 앳띤 얼굴과 나이다. 2009년 1월 극장문을 열어 아무런 지원 없이 운영하다 보니 임대료와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해 월 2~3천만원 씩 적자였단다. 그래서 김 대표가 대출까지 받아가며 간신히 극장을 꾸려왔다. 그렇게 1년, 지금은 그 전보다 조금 사정이 나아졌다. 서울시, SK케미칼, 유한킴벌리 등의 지원이 적잖게 힘이 되고 있고, 공익을 위해 운영되는 사회적 기업인증도 받았다.
“어르신들과 함께 극장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중이예요”
김은주 대표의 말처럼 이곳 영화관은 여느 영화관과 다른 점이 많다. 이곳에선 하루 세 차례 같은 영화를 상영한다.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회에서 다시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다. 영화가 시작돼도 자유롭게 극장 안을 드나들 수 있다. 영화 상영 시간에 늦어 뛰어오다가 다치기라도 할까 우려한 배려다. 상영 도중 화장실을 갈 때 옆 사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로비로 나와서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가 들어가기도 한다. 다른 극장과 가장 다른 점은 ‘노인 대접’을 확실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관람료가 만 57세 이상은 파격적 가격인 2000원이다. 반면 57세 미만의 ‘젊은이’는 7000원을 내야 한다.
때로 젊은이들은 다른 영화관과 다른 분위기에 집중이 안된다며 불평을 늘어놓다가도 취지를 들려주면 거의 수긍한다. 전체 관객의 10%는 젊은이들이다.

 

 

수요자 중심의 영화관
김 대표의 말을 듣고 보니 평범해 보이기만 했던 영화관 곳곳에서 세심한 배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화장실 주변이나 상영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손잡이를 설치했고, 당뇨가 있는 분을 위해 매표소에는 캔디나 초콜릿을 늘 구비해놓고 있다. 좌석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앉도록 하는 것도 자리 찾는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기 위한 배려다. 한마디로 수요자 중심의 영화관이다.
“우리나라 어르신들, 얼마나 불쌍한 분들이에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온갖 설움을 겪고 살다 이제 해방이 돼서 자리 잡나 싶었는데 바로 전쟁이 터졌잖아요. 피난통에 가족과 생이별을 하기도 하고…. 또 70년대는 열심히 일만 하고 80년대는 멀리 타지에서 돈벌어오느라 고생하고... 저는 어르신들이 어떤 영화들을 좋아하시는지 알아야 하니까 옛날 자료들을 많이 찾아보곤 하는데, 어느 땐 눈물이 나요. 지금은 제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다 살아내신 분들이 지금 여기, 저희 극장에 계신 거잖아요.”
김 대표의 노인을 위한 마음이 느껴졌다.
“작년에 처음 제가 이 극장을 인수할 때는 딱히 실버 분야에 초점을 둔 것은 아니었어요. 극장 주위를 살펴보니 남아도는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몰라 막막해 하시는 어르신들이 많으시더라고요. 아, 이 분들을 위한 영화관을 만들어야겠다. 자연스럽게 흘러왔죠.”
김 대표는 서울의 거의 유일한 재래식 단관 극장이었던 드림시네마를 시사회전용관으로 활용하며 운영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서대문 지역에 재개발이 결정되면서 극장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문을 닫기 전,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던 김 대표는 자비를 털어 추억의 영화 ‘더티 댄싱’을 올렸다.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 보자는 취지에서 옛날식 극장표를 제작하고 관람료도 파격적으로 개봉당시 가격인 3,500원으로 책정했다. 이는 생각보다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더티 댄싱’과 관련된 추억을 지니고 있는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 층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것.
이렇게 고전영화 상영을 염두에 두었다가 근처에 어르신들이 많고 그들의 놀이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실버영화관으로 변화시키게 된 것이다.
처음 실버영화관을 찾은 노인들은 대부분이 단골이 된다. 그래서 처음엔 2주 만에 한번씩 바뀌던 영화 프로그램도 1주일에 한 번씩으로 바꾸게 됐다.
“오실 때마다 귤이며 사탕을 제 주머니에 넣어주시는 할머니, 길에서 절 만나면 먼저 인사하는 할아버지...오히려 제가 받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만날 때마다 제 손을 꼭 잡고 좋은 일 해줘서 고맙다고 해주시는데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

오히려 노인들에게 감사한다
김 대표는 노인들을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로 치부할 게 아니라 그 분들의 인생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대우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먼저 어른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나중에 똑같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도 조금은 더 따뜻해질 거고요. 그런 의미에서 영화관을 어르신들이 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려 합니다. 요즘 외로움으로 자살이나 우울증에 걸리는 노인들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노인일수록 집에 혼자 있지 말고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김 대표는 예전부터 노인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 일을 하다보니 일에 임하는 자세와 마음이 달라지게 됐다며 고백 아닌 고백을 한다.
“어르신들의 삶은 너무나 바쁘고 고달팠습니다. 한마디로 여가를 즐길 시간도 없었으니 여가를 어떻게 보낼지 그 방법을 어찌 알겠어요? 그렇게 살아오신 분들한테 이제 시간 많으니 나가 노시라고 하면 어디 가서 노시겠어요? 지금의 잣대가 아닌 어르신들의 잣대에서 놀이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김 대표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추억의 DJ가 있고 저마다의 사연을 읽어주는 음악다방도 마련할 계획이란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닙니다. 어르신들이 가는 길은 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소외 받는 어르신들, 그분들과 함께 아름다운 어르신들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 소외받는 어르신들이 없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를 밝고 아름답게 하는 길 아니겠어요?”
이렇게 얘기하는 김은주 대표의 목소리가 유난히 아름답고 곱게 들리는 걸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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