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나쁜 학생들’로 불렸던 초등학교 동창생 몇 명이 다시 모였다. 나쁜 학생이라고 해서 뭐 대단했던 게 아니라 무를 훔친 게 전부였지만. 수업이 끝나고 늦도록 놀다가 집으로 가는 길엔 주인도 모르는 밭에 무가 자라고 있었다. 허기져 군침이 돌았고 여럿이 함께 있다는 이유로 무를 서리했다. 순서처럼 다음날 교무실에 불려가서 무릎 꿇고 두 손을 들고 벌을
살아온 세월처럼 오래된 그릇들이 그릇장에 가득하다. 맘먹고 그릇을 정리하다가 좁은 집에서 살던 옛 생각이 났다. 직장생활을 위해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던 20대 시절, 객지에서 고생하는 딸이 걱정돼 노심초사하던 부모님이 고향에서 올라오셨다. 머리엔 쌀을 이고 양손 가득 보자기가 묵직했다. 세 사람이 앉아도 숨을 못 쉴 만큼 방이 좁았고 석유곤로와 작은 찬장
나이 듦은 몸이 먼저 느끼는듯하다. 돋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내 이름 석 자도 똑바로 쓰질 못한다. 말을 하다 보면 입가에 침이 북적일 때도 있다. 육체를 홀대한 대가가 아닐까 싶다. 육체를 함부로 한 죄 말이다. 하지만 남들 앞에선 절대로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다. 특히 ‘사람 남자’ 앞에선 진짜로 숨기고 싶은 내 늙은 초상화다. 그런 우리들 넷이 저
30년 만에 만나는 초등학교 친구가 나를 어떻게 대할지 궁금했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이었지만 호기심이 전부일 수 있었다. 친구에게 줄 와인을 준비했다가 무거워서 후회했었는데 기차가 달리는 동안 잘 가져왔구나 싶었다. 와인 한 병이 곁에 있을 뿐인데도 뭔가 근사한 일이 생길 것 같았다.기차가 옥천역을 지나고 있었다. 과수밭엔 희고 분홍 꽃들을 대신해 초록빛
혼례식도 없는 날인데 분주했다. 깔끔한 정장으로 차려입고 머리도 매만졌다. 지난 주말엔 딸아이가 어버이날 기념 선물로 준 티켓으로 ‘마타하리’라는 뮤지컬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세 시간이나 되는 공연을 보는 내내 눈과 귀는 화려한 대접을 받았지만 촘촘한 의자 배열은 보통의 체구인 내게도 불편함이 있었다. 몇 해 전에도 딸은 ‘00마사지’라는 티켓을 내밀었다
아파트 아래층에 골초 남자가 살았더랬다. 남자는 창문을 열지 못할 만큼 담배를 피워댔었다. 참다못해 인터폰으로 항의했고 그 후로는 담배연기가 올라오지 않았다. 덕분에 살맛이 난 것 같았는데 웬걸. 남자가 헬스장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흡연 때문인지 금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말 한마디가 혹시? 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내 기억
웬일? 싶었다. 청소기를 열심히 돌리던 남편이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린다. 손에는 거실 바닥 틈새에서 찾은 손톱이 들려있다. 남편이 말했다. “제발, 함부로 손톱 좀 깎지 마. 이런 건 청소기로도 안 빨린다 말이야.”아내의 입장에선 어이가 없다. 누구 손톱인지 모르는 손톱까지도 내 책임이라니. 노안이 되면서 얌전히 깎아도 튀어나간 손톱이 안 보이긴 하지만 내
장을 보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린다. “또, 잊은 거 아냐?” 친구가 한심하다는 듯 이해가 간다는 듯 혀를 끌끌 찬다. 모임이 있는 걸 깜박했다. 봄 탓인지 나이 탓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진짜로 건강에 문제가 있는 건지. 걱정은 태산 같은데 해결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주에는 모처럼 마음먹고 사골을 끓이다가 “아차!”하는 사이에 사고가 났다.
장날은 구경만으로도 즐겁다. 할머니들이 캐온 달래, 원추리나물, 두릅, 그릇마다 담겨있는 수수, 기장, 검은콩들이 햇것의 싱싱함과 고향에 온 것처럼 푸근함을 준다. 물건들을 펼쳐놓은 할머니가 두릅과 바꾼 돈을 주머니에 넣으며 기뻐하신다. “그 돈 뭐하시게요?” 하고 묻자 “손주 주려고” 하신다. 그 옆의 떡장수는 전남 영광에서 가져왔다는 떡을 파느라 바쁘다
“OO엄마! 지금 집에 계세요?” 같은 동에 사는 이웃 친구의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는 금방 달려와서 고구마 한 봉지를 내민다. 시댁에서 보내왔다고 나눠준다. 그녀는 뚱뚱하지만 마음이 넉넉해서 좋다.심심할 때는 불러내서 영화 한 편을 보고 햄버거나 차 한 잔을 하고 탄천을 걸으며 맘 놓고 수다를 떠는 친구도 살이 통통하다.처녀시절 동료 K의 몸매는 비만에 가
목련꽃이 보고 싶은 얼굴처럼 무심하게 툭툭 피어난다. 터지는 꽃망울을 보면 내 몸에도 새살이 나듯 간질거린다. 목련꽃은 꽃 중에 왕처럼 도도하다가 봄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유행가 가사처럼 꽃잎에서 슬픈 감정이 뚝뚝 묻어난다.걷다 보니 해맑게 피어난 꽃들이 카톡 창으로 날아온다. 남쪽에 살거나 그곳을 여행 중인 친구가 보내온 꽃들이다. 같은 벚꽃이라도 반쯤 폈
“다음번 모임 장소는 뷔페식당으로 정할까요?” 라고 물으면 다이어트 중인 사람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다양한 음식에 후식까지 해결할 수 있는 뷔페는 인기 밥상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이도 시들해지면서 날라다 주는 음식을 앉은 자리에서 먹는 게 좋다.해외여행이 붐을 이루고 외국인 왕래가 많아지면서 각국의 현지 음식을 국내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봄볕이 좋아 거실 소파에서 소설을 읽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잠깐이었지만 꿀잠이었다. 어릴 적 대청마루에서 엄마 무릎을 베고 누우면 엄마는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만져주셨다. 귀지를 파주실 때면 스르륵 잠이 들곤 했다.이맘때면 춘곤증에 시달린다. 겨우내 움츠렸던 인체가 따뜻한 봄날에 적응하지 못하고 영양불균형 등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피로다. 피로감은 졸음을
오래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제를 올리고 사람을 불러다 위령제 같은 의식을 치렀다. 무당은 아버지가 새가 되었다고 했다. 주발에 수북한 쌀 위에 찍힌 새 발자국 흔적은 신기하기만 했다. 이승의 짐 다 내려놓고 편히 쉬시라고 빌었다. 그 후로 우물가 옆 대추나무에 앉아있는 새만 보아도 아버지의 환영처럼 쉽게 쫓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주말에 위안
2월에 간 다낭은 여름과 가을이 공존하고 있었다. 베트남의 다낭이 요즘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현지 가이드들도 북쪽인 하노이 쪽에서 중부지역인 다낭으로 많이 옮겨오고 있다. 우리 농촌 총각들이 베트남 신부를 맞고, 삼성, LG 등이 현지에 공장을 짓고 사업을 확대하고 있어서인지 베트남을 오가는 이들이 많아졌다.인천공항에서 5시간 만에 도착한 다낭 거리에
아침상에 매생이 굴국을 끓여 올렸더니 식구들이 훌훌 뚝딱 그릇을 비운다. 제철에 맞는 음식이었나 보다. 요즘 3천~4천 원이면 매생이 한 덩이를 살 수 있다. 귀한 음식인데 저렴해져서 반갑다. 식구들 입맛을 돋우려면 제철 음식을 가끔 밥상에 올려야 한다. 시댁이나 친정에서 보낸 싱싱한 해산물을 버스터미널에서 종종 받는 이웃들이 부럽기만 하다.엊그제 모임에서
거리에서 흔하게 보는 간판이 커피숍이다. 차 한 잔 마실 때만큼은 여유를 느끼고 싶어서인지. 커피숍이 늘어가는 이유 중 하나는 취업 못하고 노는 자식들을 보다가 속이 답답해진 부모가 큰 지갑을 연다고 한다. 혹은 빚이라도 내다가 차려준다니 취업난의 단면을 보는듯하다.언제부터인지 원두를 이용한 커피문화가 생활 깊숙이 뿌리내렸다. ‘바리스타’라는 말이 낯설지
이맘때면 어린 시절, 설 무렵 안방 풍경이 떠오른다. 요즘은 집에서 떡 썰 일이 없지만 그때만 해도 읍내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뽑아 와서 떡을 썰어야 했다. 밤새 떡을 써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엄마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아버지는 평소 모습과는 달리 푸근했다. 손이 벌게지도록 한참을 떡을 썰어주시던 그 칼은 사랑의 표현이자 정이 묻어났던 도구였다.차례나 생
요즘 모임에 가면 KBS 드라마 ‘부탁해요, 엄마’가 화젯거리다. 저마다 혼기에 찬 자녀들을 둬서인지. 흥분했다가 맞장구쳤다가 극중 ‘임산옥’(고두심 분)의 장남인 ‘형규’의 행동에 마치 제 자식인양 화를 내고, 고두심의 연기에 혀를 찬다. 산옥의 시한부 삶이 식구들에게 알려지면서 오열하는 남편과 급변하는 식구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한다. 우리네 삶도 고만고만
속이 상할 때면 훌쩍 떠나 무작정 걷고 싶을 때가 많았다. 낯선 길을 거닐다 어떤 날엔 인근 사찰 경내를 들르곤 했다. 맑은 풍경(風磬) 소리는 진정제처럼 마음을 가라 앉혔다. 목탁 소리는 세속의 번뇌를 털어내듯 들렸고, 먹물빛 승복은 생각마저 무심하게 하라는 듯 느껴졌다.최근 출가 상한 연령 50세를 연장하는 ‘은퇴 후 출가제도’가 호기심을 준다. 매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