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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16일은 음력5월5일로 단오(端午)날이다. 단오는 설날, 한가위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명절의 하나였다. 모내기를 끝내고 농삿일로 바쁜 일손이 잠시 한숨돌리는 때에 맞는 이 명절날에 아녀자들은 동쪽으로 흐르는 창포물에 삼단같은 머리를 감으며 한해 여름건강을 빌었다. 그리고 박사댕기로 치장을 하고 동구밖 느티나무에 매단 그네타기를 즐기며 농촌생활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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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성신문
2010.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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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란이 지난 1960년대. 우리의 산하는 벌거숭이 민둥산으로 변했고 해마다 수해의 악순환을 겪었습니다. 북녘 땅이 지금 그러하듯 추운 겨울 땔감이 없어 산에서 나무를 마구 베어 밥을 짓고 온돌을 덥혔습니다. 당시 지상 최대의 과제는 산림녹화였습니다. 고사리 손의 꼬마 4-H회원들까지 산에 나무를 심는 봉사활동에 나섰고 온 국민이 산림녹화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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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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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농촌마을에는 어김없이 마을 어귀에 물레방아가 하나쯤은 있었다. 보를 만들어 농경지에 물을 대고 물이 남는 수확기에는 물레방아를 돌려 보리나 쌀을 찧었고 때로는 밀가루를 만드는데도 이용됐다.방아를 두 개씩 설치해 오르락내리락 하며 곡식을 찧도록 설계된 물레방아는 1960년대 이후 농기계와 전기가 들어오면서 사양길에 접어들어 이제는 농촌에서 찾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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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성신문
2010.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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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농촌을 재건하기 위해 UN과 ICA(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이 지역사회개발사업을 도입할 것을 권장함에 따라 1958년도에 지역사회개발사업이 국가사업으로 채택됐습니다.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인력을 마을에 배치하고 마을회관건립과 퇴비증산 등 마을 자체의 자조활동을 추진하고, 토목건설, 보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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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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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과 통신이 열악하고 정보가 단절됐던 1960년대. 농어촌에 책보내기 운동은 농어촌주민의 의식을 일깨우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마을회관에 소규모 독서실을 운영하는 일은 농촌청소년, 4-H회원들의 몫이었고 4-H독서과제 경진도 있었습니다. 농촌에 책보내기 사업은 농촌문고, 향토문고, 국민문고 등 이름으로 이어져 오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새마을 문고로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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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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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반. 보온절충못자리와 감자 비닐멀칭재배는 다수확재배를 위한 혁신적인 기술이었습니다. 논 감자를 심고 60여일만에 수확을 한 후 다시 벼를 심는데 멀칭재배는 2모작을 손쉽게 할 수 있고 잡초방제와 지온상승, 가뭄방지 등 일석5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지붕개량이 되기 전 초가집 농촌마을과 하얀 비닐로 덮인 감자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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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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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톨의 식량이라도 더 생산하기 위해 60년대 보리이식재배도 시도됐습니다. 벼 수확 후 보리파종의 적기를 놓칠 경우를 대비해 30~40일전에 육묘 상에 보리를 파종한 후 11월 초중순경에 어린 묘를 논밭에 직접 이식했습니다. 이렇게 할 경우 30~50% 이상 다수확을 할 수 있고, 남부지방에서는 3모작도 가능하다고 했습니다.보리를 손으로 직접 이식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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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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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씨나락만은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굶어죽어도 씨나락(볍씨)만은 베고 죽어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해마나 이맘때면 천장에 매달아 두었던 씨앗을 내려 소금물가리기로 충실한 종자를 고르는 침종과 종자소득을 했습니다. 통일벼가 한창 확대되던 시절, ‘유신벼’라는 다수확 품종이 나와 마을 주민들이 집단재배를 위한 공동 작업으로 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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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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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도 넘기기 힘든 가난했던 시절, 농촌진흥청은 농촌에 응용영양사업을 추진했습니다. UNICEF(유니세프)의 지원을 받아 1967년부터 추진된 응용영양사업은 시범마을을 설치하고 농민교육을 통해 농민식생활과 어린이 영양개선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곡류위주의 식사형태를 개선하고 5가지 식품군을 개발해 균형식을 보급하는 등 마을주민의 호응 속에 20년간이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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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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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벼농사가 시작되는 곡우쯤이면 집집마다 못자리가 한창이었습니다. 물못자리는 냉해가 오면 싹이 트지 않아 모내기가 늦어지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비닐농법이 시작되면서 물못자리와 밭못자리 형태를 절충한 보온절충못자리가 있었습니다. 모의 전반기에는 밭못자리형태로 키우고 냉해가 없을 시기에는 물못자리형태로 키워 모내기를 하는 방법이었습니다.‘모 농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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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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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조차도 귀했던 1960년대. 황소는 우리집 농사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논밭을 갈고, 써레질을 하고 퇴비를 운반하던 누렁이는 열 사람의 몫을 혼자서 하고도 남았습니다. 아버지는 누렁이를 앞세우고 겨우내 얼었던 땅에 봄기운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랴, 워~워!” 아버지의 호령에 따라 우직하고 근면한 누렁이는 겨우내 얼었던 흙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기계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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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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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중략)…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서정시인 정지용의 향수(鄕愁)가 문득 생각나게 합니다. 해 저무는 저녁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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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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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차를 타고 시골길을 구불구불 달려간다…’ 식생활 교육을 담당하던 한 생활지도사의 노랫말이 생각납니다. 60~70년대, 식량증산과제에 묻혀 빛이 바랜 듯이 보이지만 농촌주민의 의식주를 개선하는 생활개선사업은 위대했습니다. 농촌 오지마을을 찾아가서 현장에서 영양개선과 요리법을 교육하는 식생활 교육차(일명 빵차)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식생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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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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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가스조차도 없던 시절, 축산분뇨를 이용한 메탄가스 생산은 취사연료를 해결하고 산림보호에도 한 몫을 하는 농촌지도사업의 야심찬 계획이었습니다. 축산폐수로부터 오염을 방지하고 깨끗한 주방 환경을 개선하는 일석이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메탄가스가 처음 나오는 날 농촌진흥청장까지 직접 나와 축하를 했습니다.그러나 겨울철에는 날씨가 추워 축산분뇨가 발효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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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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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흙의 문화를 농촌에 뿌리내리자고 고사리 같은 어린 손을 가슴에 대고 맹세를 했습니다. ‘나는 4-H구락부와 사회와 우리나라를 위해…’ 손수 흙벽돌을 찍어 만든 초가집 마을회관 앞에서 어린 4-H회원들은 지도소 선생님으로부터 4-H서약을 배웠습니다. 4-H운동이 시작된 지 60년이 넘은 지금, 70고개를 한참 넘어 인생 황혼기를 맞고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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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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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금수나 강산 어여쁜 나라 한 마음으로 가꿔가며…’ 이른 새벽 먼동이 트면 마을마다 앰프방송으로 이 노래가 울러 펴졌습니다. 농한기 소득을 올리기 위한 부업단지가 선정되면서 마을사람들은 시누대(해장죽) 나무를 이용한 바구니 등 죽세공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공동작업을 했습니다. 지금이야 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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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성신문
2010.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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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추운 겨울철에도 농민교육은 어김없이 시작됐습니다. 농촌지도소 직원들은 자전거에 차트 등 교육교재를 싣고 마을에 도착해 토담집 양지바른 곳에 멍석을 깔고 장마당을 펼쳤습니다.마을회관조차 없는 시골마을, 엄동설한에도 마을사람들은 성황을 이뤘습니다. 훈훈한 인정이 살아있는 농촌마을, 주부들은 밖에서 국밥을 끓이고 막걸리와 안주를 장만해 교육이 끝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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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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섶다리는 겨울이 오기 전 참나무로 다리발을 만들고 그 위에 청솔가지를 엮어 올리고 흙을 덮어 만들어 놓은 임시다리였습니다. 여름장마 때 떠내려가면 가을걷이를 하기 전 마을사람들이 다시 섶다리를 놓아야만 했습니다. 고향마을은 섶다리를 몇 개쯤 건너야 갈 수 있는 산촌마을이었습니다. 섶다리가 없는 곳은 한겨울에도 신발을 벗고 살얼음판 시냇물을 건너 20리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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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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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농사도 없던 긴 겨울, 농촌사람들은 사랑방에 모여앉아 도박이나 추렴으로 가사를 탕진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도박 없는 마을 만들기’ 캠페인도 전개하고, 농한기 새끼 꼬기, 객토 등 생산적인 활동을 권장했습니다. 농촌지도소 직원들은 추운 겨울에도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을 찾아 사랑방 좌담식 교육을 했습니다. 이것은 농민을 만나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었고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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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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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농한기에 ‘객토를 하라’는 대통령의 특별지시사항이 떨어지면 지방공무원은 비상이 걸립니다.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생산해 식량을 자급하자는 절박한 선택이었습니다. 짚은 이미 땔감으로 사용하고, 화학비료가 부족한 시절에 객토는 노후화된 논에 영양을 공급하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산모퉁이에 좋은 흙을 골라 마을주민들이 협동해 꽁꽁 언 흙을 지게로 나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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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두 대기자
2010.01.11 00:00